2006년, 기대하지 않았던 우리 대표선수들의 대활약으로 전 세계에 한국 야구의 위상을 올릴 수 있었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2009년 3월 5일 2회 대회를 시작합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매 경기 한 편의 드라마같은 명장면을 연출하며, 우리나라 남자 구기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주었던 한국야구팀에게 한국 야구팬들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한 명의 야구팬으로써 이 번 대회에서도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매경기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선전해주기를 바라며 그동안 목이 빠지게 대회 시작일을 기다려왔습니다.
하지만, 대회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저의 기대에 부푼 마음에, 김을 '확~'새게 하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스포츠를 통해 여러가지 마케팅 기법을 활용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우리 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를 보기위해 TV앞에 앉는 것은 우리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을 응원하기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선수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우리 야구팬들의 환의와 열정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그동안 공짜로 보아왔기 때문에, 돈을 내고는 절대 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절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방송 플랫폼의 다변화로 최근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중계권 문제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 또한 더 이상 국민들이 한순간이라도 낙담하지 않을 수 있도록, 시대적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국가대표 감독 선임 문제부터 선수 구성까지 많은 홍역을 치뤘던 우리 대표팀이 이번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후회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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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중계권을 비싸게 따서 그만큼 이윤을 보겠다는데 할말도 없고, 유료화했을때 보고 싶은 사람은 돈주고 보면되고, 보기 싫은 사람은 보지 않으면 되는데.. wbc게임 시청률이 아무리 높아도 40%가 넘지 않을텐데 나머지 사람들은 안봐도 되는데 왜 이리 야단법석을 부리는지 모르겠네
2009/03/04 07:44 [ ADDR : EDIT/ DEL : REPLY ]이게다.... JC그룹의 IB스포츠 때문이지...CJ 탈세에 지저분한 집단.... 썩어빠진 것들이 따온 중계권으로는 WBC암본다.
2009/03/04 09:16 [ ADDR : EDIT/ DEL : REPLY ]바보님의 말씀에 오히려 동감이가네요..
2009/03/04 09:26 [ ADDR : EDIT/ DEL : REPLY ]저 자신도 한국대표팀의 선전을기원하지만 야구는원래 별로좋아하지않기때문에 별로 신경쓰이지않습니다
국민모두가 야구를좋아하는것도 아닌것같구요 야구팬은 공중파 시청자의 과반수도 훨씬 미치지못할거라고생각합니다
미안하지만 도덕책 같은 내용이네요;; 너도 잘하고 나도 잘하자;;;
2009/03/04 09:38 [ ADDR : EDIT/ DEL : REPLY ]전 오히려 방송사측에서 가격 조정을 위한 의지를 보인게 잘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국에서 나가는 돈, 방송국 돈이 아니라 국민 세금입니다.
'더 받겠다 돈 없다' 문제인데 대처랄게 있나요..
*안녕하세요.
2009/05/06 14:17 [ ADDR : EDIT/ DEL : REPLY ]-저는 소년가장 입니다!-
-도움의 글을 올립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기상! 기상! 아침이다! 빰빠라빠바밤!”
오늘도 어김없이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알람시계를 잠에서 덜
깨어 비몽사몽인 채로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껐습니다.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씻고, 교복을 갈아입고, 밥을 먹고 학교
갈 준비를 마치면 아침 6시 45분입니다. 학교가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지만 아침 일찍 학교 가는 것을 즐기는 지라 언제나
저의 등교 시간은 이릅니다.
아직은 이른 시각이라 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아직도
꿈나라에 있습니다.
하지만 전 왜 이렇게 싱글벙글 즐거운지 모르겠습니다. 피곤함이
없진 않지만 왜 이렇게도 마음이 즐겁고 행복한 지. 그건 아
마도 지금의 저에게 가족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겉으로는 부유했지만 안으로는 한없이 궁핍한 그런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고급스러운 옷과 장난감들로는 부모의 사랑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언제나 언성을 높이시며 크고 작은 부부싸움을 하셨습니다. 그럴 때 마다 언제나 방 한구석 침대 모퉁이에 동생과 함께 머릴 손으로 감싸며 움츠려 있어야만 했습니다.
무섭기만 하였습니다. 두렵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저는 겁을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린 저에게 부모님의 불화(不和)에 내성이 생겼던 겁니다. 그런 저는 마음이 착하고 여린 여동생과는 달리 반항을 하고, 고집을 부리고, 친구를 때리는 등 못된 아이로 모습이 변해갔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고작 9살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정은 깨어졌고, 저와 여동생 그리고 엄마 이렇게 세 사람만 가정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엄마는 발버둥치며 저희와 살아가려고 밤낮으로 일하러 다니시며 가정을 꾸려나가셨지만, 그게 엄마에겐 큰 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엄마께서는 시름시름 앓으시는 일이 많아지셨고, 누워계시는 날이 많아지셨습니다.
그 해 11월 병원에선 엄마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위암말기였습니다. “3개월 남았습니다.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엄마 곁에 함께 있었던 저는 담당 선생님께, “그럼 우리 엄마 죽어요? 왜요? 왜 우리 엄마가 죽는데요! 우리 엄만 나쁜 짓 안했단 말이에요! 우리 엄마가 얼마나 착한데 왜 죽어요! 제발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이런 저의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시던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얘야 나도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단다. 미안하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너무나 미안하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이 제가 살리고 싶다고 해서 살고 죽이고 싶다고 해서 죽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을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엄마에겐 죽음도 쉽게 허락되질 않았습니다. 엄마의 투병 생활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암은 위는 물론이고, 장, 간, 이자, 폐 등 모든 몸속의 장기에 전이되어 손을 쓸 수조차도 없었습니다. 독한 항암치료로 인해 밤낮으로 토하고, 뼛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진통으로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하셨습니다. 어린 자식들에게 자신이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계속 저희를 떼어 내려고만 하셨습니다.
“엄마라고 제대로 해 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면 내가 무슨 염치가 있어요.”
이렇게 친척들에게 말씀하시며 우셨던 모습을 전 뒤에서 눈물을 삼키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희에게 정을 떼시려고 일부러 모질게 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해 3월 4일, 유난히도 날씨가 짓궂던 그 날,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 전에 너무도 많은 눈물을 흘려서인지, 아님 저희 남매끼리 홀로 살아가야 할 두려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눈물조차 나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와 동생 둘 만의 생활은 그리 만만치를 못했습니다.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12살, 9살 이 어린 두 아이들이 무엇 하나 제대로 하겠습니까? 기본적인 생활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잠이 많은 남매는 일찍 자건 늦게 자건 항상 늦잠을 자서 학교를 지각하기 일쑤였고, 잘못된 식습관으로 탈도 많이 나고, 학업은 늘 밑바닥을 헤맸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흘러 2003년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한 기회를 얻어 어학연수를 1년 동안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소년소녀 가장 세대에게 주는 특별한 기회였지만 1년의 어학연수가 저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없는 1년 동안 동생 미영이는 한 목사님 가정에 위탁되어 생활을 했었는데, 그것을 인연으로 저도 귀국 후에 목사님 가정에 위탁되어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저는 보통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아이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 댁 자녀 어느 아이도 자기주장을 고집 부려가며 내세우는 아이가 없었는데 유독 전 제 주장이 너무나도 강하고 막무가내라 여러 사람들에게 눈물과 상처를 줬습니다.
그런 저의 단점들을 목사님 사모님께서는 강점으로 다듬어 주셨습니다. 언제나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고,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저를 위해 좋은 멘토들까지 붙여주시며 저를 위해 정성을 다해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 때는 어린 철부지였나 봅니다. 이런 사랑 속에서도 언제나 문제는 제가 일으켰습니다. 무뚝뚝하고 제멋대로인 말투와 이기적인 행동들로 인해 동생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습니다. 전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어린 동생들에겐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갔었나 봅니다.
그러나 이런 저를, 못남투성이인 저를 놓지 않으시고, 모난 네모를 둥글둥글한 동그라미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 목사님과 사모님은 정말 많은 시간을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게 두세 달 정도의 시간을 거쳐 저의 마음을 안정시키신 다음엔 떨어진 성적을 다시 올리기 위해 선생님을 붙이는 등 또 다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받은 첫 성적은 반에서 40명 중에 17등이었습니다.
정말 바닥을 헤매던 제가 다시 그만큼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다 목사님과 사모님 덕분이었습니다. 언제나 제가 기죽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제 위치를 찾게 되고, 그렇게 서서히 몸과 마음에 평화가 다시 찾길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웃기도 많이 웃고, 울기도 많이 우는 전형적인 또래 남학생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난 지 4년째입니다. 중간 중간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제 뒤에 계시는 두 분으로 인해 잘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위탁이 끝난 상태지만 저희 남매는 여전히 목사님 댁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두 분은 저를 친아들처럼 귀여워 해 주시고, 지금도 여전히 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십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그 전보다 시간의 여유는 많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많은 대화를 나눠주십니다.
전 『방송국 PD』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것을 화제로 두 분께서는 언제나 많은 조언을 해주십니다. 이것저것 인간으로서 지켜나가야 할 도리 같은 것들을 지적해 주시고, 세상을 보는 눈과 따뜻하게 사람을 볼 수 있도록 늘 조언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어쩌면 제가 PD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 또한 두 분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밝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시기 위해 노력하시고,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과 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시는 두 분의 영향으로 저도 방송이라는 매개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밝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고, 희망찬 삶을 꿈꿀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PD라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든지 등교 시간은 이르고 하교 시간은 늦을 것입니다. 저 또한 하교 시간이 중학교 때보다 훨씬 늦어졌고, 더군다나 전 학교 독서실이 조용하다는 이유로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있다 보니 자연적으로 집에 늦게 오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걱정해 주시는 두 분의 모습을 볼 때면 한 편으로는 죄송하지만 한 편으로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도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어, 그래서 행복해.’
목사님 가정을 만나기 전에는 저는 이런 것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습니다. 이런 행복이 정상적인 가정의 또래 친구들에겐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제겐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걸 극복하려고 내색하지 않고, 강한 척 했지만 기다려 주는 사람 없는 어두컴컴한 집, 암흑 그 자체의 집으로 들어갈라치면 한없이 작아지고 비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전 행복합니다. 아주 행복합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부자라고 해서 꼭 행복하지는 않고, 가난뱅이라고 해서 꼭 불행하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족의 사랑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작은 것에 만족과 감사가 있다면 아무리 백만장자라고 할지라도 부럽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선 전 무척이나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높은 성적이 아닌 중간 정도이지만 저에 대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제가 들어가고 싶은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하여 당당하게 제 일을 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제 모습을 두 분께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다듬어 나가야 할 부분들이 많지만 지금까지 잘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한 눈 팔지 않고 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저는 반드시 제가 꿈꿔왔던 일이 실현될 것을 믿습니다. 물론 두 분이 제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기에 반드시 꿈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너무 많은 것들을 이 세상으로부터 받아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잘나지도 않은 제 자신이 어떻게 이 많은 사랑들을 받았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몸도 마음도 한 해 두 해 다르게 성장하는 제 모습을 볼 때면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함께 자라나는 마음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감사와 보답이라는 마음입니다.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기에 또 한 번 감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린 저이기에 보답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이라는 신분으로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이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이 세상에 저로 인해 한 줄기 희망의 빛줄기가 비쳐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가 받았으니 당연히 저 또한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제 마음 속 깊은 곳의 사랑까지도 그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
가입하기: http://www.donjunda.net/index.php?love_id=shinillku
*****(합법적인 인터넷 부업)
*****이런 저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저는 아직 나이가 어려 취업도 곤란한 상태입니다.)
*****MI Name is shinillku.*****
****신=신이 나에게 무었을 주었나 생각지 말며.
일=일과 속에서,
규=규율이란 울타리 안에서 남을 위해,
초가 자신을 태우며 어둠을 밝히우는 것과 같이.
남을 위해 헌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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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게임~~~ 필요하신 분들 잘 쓰세요.)